제리 맥과이어. 1997
깊은 밤, 영화 한 편을 보고 아버지처럼 따뜻한 대부님께서 주신 육포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기울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평소 잦은 음주로 실수가 많았던 터라, 집에서만큼은 말실수가 나오지 않을 정도인 딱 한 캔만 마시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니, 잠들어야 할 시간임에도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졌습니다. 영화의 여운인지, 술기운인지, 아니면 복지관의 분위기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은 제게 몇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글을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영화 이야기
오늘 감상한 영화는 제리 맥과이어라는, 이제는 고전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걸작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영화 중 하나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삶과 너무나 닮은 모습, 심지어 제 자신의 모습까지 발견했기에 감동적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저에게 논리라는 단어는 사치입니다. 논리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창 시절 성적도 좋지 않았던 제가 글을 얼마나 잘 쓰겠습니까. 지금부터 쓰이는 이 이야기들은 이러한 모든 배경을 잠시 잊고 편안하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스포츠 에이전트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가 선수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인간적이고 선수를 진정으로 위하는 에이전트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그의 뜻에 동참하는 선수 로드(쿠바 쿠딩 주니어), 그의 아내 도로시(르네 젤위거)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연인, 우정, 비즈니스 관계 등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매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주인공 제리 맥과이어는 이러한 이상적인 관계를 실현하고 조직 구조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영화 속 톰 크루즈처럼, 저 역시 새벽에 일어나 복지관의 변화를 위한 제안서를 작성하곤 합니다. 이 제안서를 통해 기관이 변화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해고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기업의 이익과 통상적인 가치관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제리의 메모, 아니 제안서에 감동받았다며 동반 퇴직을 감행한 도로시는 작은 에이전시를 설립하고 유일하게 남은 선수 로드의 에이전트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나오는 인상적인 대화가 있습니다. 도로시와 제리의 대화 중 도로시가 "당신의 메모에 감동받았어요"라고 말하면, 제리는 "그건 메모가 아니라 제안서예요"라고 응수하는 장면입니다. 제안서를 작성한다는 행위 자체가 현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도로시가 언급하는 '메모'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인간적인 소통과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이 점을 종합해 보면, 제리와 회사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매너'의 개념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에 제리가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한 것이고, 도로시는 너무나 당연한 인간적인 면모를 제리가 제시했기에 그 점에 깊이 감동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와 내 이야기 – 로드와 제리 맥과이어
로드는 에이전시는 물론 스폰서, 소속팀, 주변 선수들, 심지어 관객들에게까지 끊임없이 불만을 표출하는 선수입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대형 에이전시들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리 맥과이어만이 유일하게 그의 잠재력을 믿고 인간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매너'를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로드의 선수로서의 자부심과 긍정적인 마음을 북돋아 주기 위해 멘토, 친구, 그리고 에이전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심지어 선수와 에이전트라는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입닥치고 마음으로 운동을 해"라는 충고까지 건넵니다. 이들에게는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신뢰가 없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였다면, 제리는 아마 즉시 해고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드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자신과 가족, 그리고 친구 제리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 락커룸을 나오며 제리를 먼저 찾아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에서는 감동과 보상이라는 두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저와 제리 맥과이어, 그리고 저와 로드를 끊임없이 비교했습니다. 표경흠 강사님은 사회복지서비스 기관을 '에이전시'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비즈니스만을 위한 에이전시의 역할에만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안서를 회사에 제출하기 전 제리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만약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생각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칠 생각입니다.
에이전시 [agency]
은행이 국제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영업 형태로, 개인 예금 업무는 취급하지 않고 대출만 가능한 은행 지점 형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영업 활동 없이 자료 및 정보 수집만을 담당하는 대표 사무소(representative office)보다 발전된 형태이며, 에이전시에서 더 나아가 지점(branch) 및 자회사(subsidiary)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대상자'라고 부르는 분들은 어쩌면 우리의 '선수'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위한 진정한 '에이전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늘 부족한 지식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곤 했습니다. 오늘 돌이켜보니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는지, 스스로 '최고의 바보'였다고 감히 단정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기 제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왜 선수들을 매너 없이 대하는 에이전시였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에게도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보수와 보너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곱씹으며 잠을 청하려 하자, 저를 둘러싼 수많은 대상자, 동료, 그리고 가족들이 얼마나 저에게 실망하며 살아왔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루의 상당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대상자를 차별하며, 실적과 보수를 위해 제 담당 대상자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숫자로 취급했던 저. 팀장으로서, 팀원으로서 부족한 지식으로 그들에게 피상적인 슈퍼비전을 제공하려 했던 저. 그 슈퍼비전으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무심하게 지나쳤던 저.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해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감정은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저. 조직의 단합을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 내 사각지대를 만들었던 저.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이 나올 이러한 반성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습니다. 이러다 또 다른 상담 대상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저의 진정한 욕구는 무엇일까요? 제가 '대상자'라고 부르는 우리 이웃들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일을 하고, 그들의 변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요? 복지관의 변화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상자의 욕구와 우리의 욕구를 일치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숫자 놀음에 연연하지 말고, 대상자의 진정한 필요에 맞는 서비스를 찾아 제공해야 합니다. 대상자의 양적인 측면보다 질적인 관계, 가족 같으면서도 멘토이고, 친구 같은 그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상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매너'입니다. 형식적인 제안서가 아닌, 진심을 담은 메모처럼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제리의 고객이었던 로드의 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고객인 대상자, 우리 이웃들에게도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제가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영화가 바로 우리와 우리의 사회복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상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영화와 내 이야기 – 도로시와 제리 맥과이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도로시와 제리의 관계입니다. 그들은 생각의 일치를 통해 파트너가 되고, 깊은 신뢰를 쌓아갑니다. 이는 어쩌면 복지관 내부에서 일어나는 직원과 직원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일치는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로 인해 하나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로드와 같은 훌륭한 선수는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욕구는 분명 다를 수 있습니다. 저와 팀원, 팀원과 팀원, 또 다른 팀원과 팀원.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의, 최고의 서비스를 우리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만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두 명 이상의 팀원, 그리고 그 외 다른 팀원들과 얼마나 깊이 공유하고 계십니까? 입사한 지 오래되었다면, 그 경력에 걸맞은 충분한 슈퍼비전을 제공하고 계십니까?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제 대답은 3초도 채 걸리지 않아 이렇게 글로 옮겨집니다. "아는 한도 내에서 제공해 드립니다." 동료에게 제공한 슈퍼비전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팀원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습니까? 우리를 제외한 모든 주변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방법, 그리고 지역사회 조직과 자발적인 모임으로서의 발전 등.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요?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 그것을 공유하기 위한 모임과 사내 교육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까?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모르는 것보다 어쩌면 우리의 욕구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활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제대로 된 슈퍼비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관련 서적 몇 권이라도 공부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슈퍼비전을 제공했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수시로 팀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은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제가 모른다고 해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팀 내부에서라도 서로의 생각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가 아니더라도, 단기간의 생각과 목표 값은 하나를 지향해야만 서로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매너'에 대해 이야기 드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매너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할 정도로 냉정하고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차차 알아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화 속 제리 맥과이어처럼 다행히 깨닫게 된다면 좋겠지만, 너무 늦어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조차 없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습니다. 복지관에서 근무하고 공모 사업에 참여하여 성공적인 사업 진행을 이루어낸다면 겉으로는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그저 실적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던 대상자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에이전시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서 그들을 위한 진정한 '매너'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할 의무가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끝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다소 두서없어진 것 같습니다.
PS: 영화 내용에서 제리 맥과이어의 진정한 욕구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필요한 매너 있는 에이전시"를 만드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의 욕구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필요한 매너 있는 지역사회복지관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