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형 이제 그만하면 안될까?
우위의 경제학, 그리고 미국의 '역주행'
경제학에서 ‘우위(優位)’라는 단어는 국가 간 무역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핵심 개념이다. 특히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와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라는 두 이론은 오늘날 국제 무역의 구조와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틀을 제공한다.
절대우위는 ‘누가 더 잘 만들 수 있는가’
18세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절대우위를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나라가 동일한 자원을 사용해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다면, 그 재화에 대해 절대우위를 가진다.” 쉽게 말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그 분야에서 앞서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생산성의 차이에 주목하며 무역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비교우위는 ‘누가 덜 손해 보고 만들 수 있는가’
하지만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사람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였다. 그는 ‘비교우위’ 개념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심지어 모든 것을 더 잘하는 나라조차도 무역을 해야 한다.” 왜일까? 바로 기회비용 때문이다. 어떤 재화를 만들기 위해 다른 재화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 포기의 비용이 더 낮은 나라가 해당 재화에 비교우위를 가진다. 이 이론은 무역은 효율성의 문제이자, 선택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절대우위는 능력의 차이, 비교우위는 선택의 효율성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 간 무역은 이 비교우위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화 거래를 넘어 서비스, 지식, 기술, 인력 등 무형의 자산까지도 포함된다.
그런데 왜 미국은 ‘관세의 장벽’을 다시 세우는가?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세계는 수십 년간 자유무역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미국은 그 선두에 있었다. 수많은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며, 무역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확고히 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의 기수였던 미국이 이제는 보호무역의 방패를 들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의 관세정책은 세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철강, 반도체, 농산물 등 여러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자유무역을 ‘재협상’의 카드로 활용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기엔, 그 철학적 기반이 너무 빈약하다. 오히려 자유무역 원칙을 흔들고, 파트너 국가들과의 신뢰에 균열을 초래할 뿐이다.
무역은 '전쟁'이 아니다. '공존'이다
우리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역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어야 한다. 비교우위는 결국 누가 덜 손해 보고 만들 수 있는지를 따져, 서로 윈윈(win-win)을 실현하는 구조다.
미국이 세계 무역의 중심에서 다시 벽을 쌓기 시작한다면, 이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세계는 이제 ‘우리가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절대우위든 비교우위든, 진짜 중요한 건 우위의 개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을 선택하는 자세 아닐까?
자유무역은 선택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