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란의 불가피한 전쟁인가
전쟁의 예고된 그림자: 이스라엘과 이란, 그 불가피한 충돌
역사는 때로, 마치 반복되는 계절처럼 같은 장면을 되풀이한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단지 한 번의 공습이나 한 줄의 뉴스로 정의할 수 없는, 수십 년에 걸친 예고된 그림자다.
이 둘은 언제나 ‘언제 터지느냐’의 문제였지, ‘터질 것이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념과 체제의 평행선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양국의 운명은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방 중심의 질서를 거부하며 탄생한 이란 신정체제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국가적 과제로 선언했고,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자국의 안보를 핵심 가치로 삼으며, 주변국의 적대감 속에서 존재 그 자체가 투쟁인 국가로 성장해 왔다.
이념이 국경을 넘고,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될 때, 갈등은 필연이 된다. 두 국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타협이 아니라 적대의 논리만을 강화해왔다.
핵과 불신, 그리고 선제공격의 논리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반면, 이란은 "민간용"이라 주장하면서도 60% 이상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했고, 이는 핵무기 수준에 가까운 수치다. 국제사회가 이를 두고 논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핵 없는 이란’을 위해 공격을 선택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전에도 이라크(1981), 시리아(2007)의 원자로를 선제 타격한 전례가 있다. 예방이 곧 생존이라는 철학, 그들이 스스로 지켜온 안보의 방정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상대는 단순한 테러조직이 아닌, 중동의 지정학을 좌우하는 거대한 국가라는 점이다.
프록시전과 그림자 전쟁의 공식화
이 둘은 오랫동안 직접 싸우지 않았다. 대신,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후티 등을 무대로 서로의 대리인을 앞세운 전쟁을 벌여왔다. 이런 ‘그림자 전쟁’은 국제사회의 관심 밖에서 이어져 왔고, 언제든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뇌관이 되어 왔다.
이번 사태는 그 뇌관이 처음으로 정식 작동한 사건이다.
이제 양측은 더 이상 간접적인 경고를 넘어서, 정면으로 무기를 겨누는 국면으로 진입했다.
내부 정치가 외교를 밀어낸 순간
현실은 더 냉정하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에서 사법개혁 논란과 부패 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다. 국민을 단결시키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외부 충격, 그것이 바로 이란이라는 ‘적’이었다. 반대로, 이란 역시 반정부 시위와 경제 위기로 흔들리는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의 위협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 결과, 이 전쟁은 단지 군사적 행동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을 위한 승부수가 되었다.
세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미국은 이스라엘의 오래된 동맹국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확전을 꺼리고 있다. 나토는 중동 문제에 직접 개입할 의무는 없지만, 중동의 불안정이 곧 유럽 안보의 위협이라는 점에서 방관할 수만은 없다.
이제 세계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이란의 보복을 차단하기 위해 또 다른 개입을 감행할 것인가?
불가피한 전쟁, 피할 수 없는 질문
이 전쟁은 한순간의 감정이나 실수로 빚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외교 대신 무력과 보복으로 점철된 전략의 축적물이다. 그리고 이제, 그 폭발의 순간이 다가왔다.
전쟁은 언제나 질문을 남긴다.
이 싸움의 끝은 어디인가? 누가 이기더라도, 그 땅의 사람들은 정말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역사는 말한다.
"반복되는 갈등은, 외면된 대화의 무덤 위에 피어난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제 그 무덤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