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짐
지록위마의 정치: 말이 사슴 되고, 사슴이 말 되는 선거판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판은 늘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 말이 사슴이 되고, 사슴이 말이 되는 세상이 열린다. 이른바 ‘지록위마(指鹿爲馬)’, 진실을 왜곡해 거짓을 강요하는 정치의 대표적인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최근 이준석 의원과 권성동 의원이 SNS를 통해 벌인 설전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준석 의원은 김문수 후보에게 “이미 이재명에게 졌으니 표를 나에게 달라”고 했고, 권성동 의원은 “지금까지 잘 싸웠고, 기류가 바뀌고 있다. 승리는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이 말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선거 후 권력구도 재편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여론조사 수치는 말해준다
6월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A리서치의 마지막 여론조사(5월 말 기준, 전국 유권자 1,002명 대상, 표본오차 ±3.1%)를 보면,
이재명 후보 지지율: 43.6%
김문수 후보 지지율: 28.9%
이준석 후보 지지율: 9.7%
로 나타났다. 김문수와 이준석이 단일화를 한다 해도 합산 지지율은 약 38.6%로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따라잡지 못한다. 실제로 가상 단일화 시나리오를 적용한 B여론조사의 결과도 유사했다. 이준석 후보가 양보하고 김문수 단일후보가 된 경우, 이재명 후보는 45.1%, 김문수 단일후보는 36.8%로 여전히 약 8%p 격차가 존재했다.
즉, 이른바 **‘보수 대통합’ ‘표심 기류 변화’ ‘승리의 자신감’**은 정제되지 않은 수사에 가깝다. 실체 없는 자신감은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선거 후를 노린 전투
그렇다면 왜 이런 허상을 포장한 말장난이 난무하는가. 그 해답은 선거 후에 벌어질 국민의힘 당내 권력 재편 가능성에 있다.
이준석 의원은 각종 윤리 문제와 당 징계 전력으로 인해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고,
권성동 의원은 지역구인 강릉에서조차 당내 적이 많고, 차기 지도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한다. 실질적 승리를 위한 전략이 아닌, 선거 후 당권 경쟁을 위한 발언들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당권을 흔들 만큼의 조직력이나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른바 차기 ‘주류 교체’의 대안도 되지 못하고, 비주류 결집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태다.
국민의힘의 착각, 그리고 미래
국민의힘은 더 이상 간판만 바꾸는 재포장 정당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과거처럼 **‘내란 공범’ ‘극우 보수’ ‘지역 독점 정치’**로 규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TK(대구·경북) 기반조차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최근 10여 차례의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TK 지역 지지율 감소는 심각하다. 2020년 총선 당시 60~70%를 기록하던 TK 지지율이 최근 4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는 그 경고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여기에다 정체된 청년층 지지율, 수도권 지지도 부진, 호남·충청 무관심까지 더해지면, 국민의힘은 전국 정당의 외형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
말보다 진실이 필요한 시기
이제는 허상과 말잔치보다 진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 그리고 극우에서 벗어난 실용 보수 노선 정립이 필요하다. 더 이상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거나 허무맹랑한 승리 예언으로 국민을 속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책임이다. 지록위마의 시대를 넘어서려면, 그 첫걸음은 정직한 언어와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