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 달 그림자"… 그림자인가, 권력의 실체인가?

2023년 12월 3일. 대한민국 현대사에 또 하나의 불길한 이정표가 새겨졌다.
윤석열 정권이 ‘계엄령 선포’를 내부 검토했다는 보도가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는 일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불과 몇 년 전, 박근혜 정부 당시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사태가 국민의 분노와 헌법정신에 의해 무너진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받는 순간마다 ‘군대’를 불러들이려는 유혹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하다.
그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한 공식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던졌다.
“호수 위에 비친 달 그림자처럼, 실체 없는 불안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한때 검찰총장이었던 대통령은, 마치 철학적 성찰을 담은 듯한 이 말을 남기며 현재의 위기를 ‘허상’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허상인가?
'달 그림자' 비유의 부적절함
‘호수 위의 달 그림자’는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국정에 대한 비판이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의혹을 지적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실체 없는 그림자’로 묘사한 것은 오히려 비유의 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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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이 서명을 촉구한 김건희 특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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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문건으로 드러난 계엄령 검토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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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과 NSC 일부 라인의 실제 개입 의혹
이러한 사안들은 물결 위에 흔들리는 달 그림자 따위가 아니다.
국가권력의 근간을 뒤흔드는 실체적 문제이며, 명확한 책임과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 비유는 단지 감성적인 수사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대통령이 헌정 위기를 지적하는 시민의 시선을 ‘허상’으로 조롱하고, ‘두려움 과잉’이라며 반박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권력의 오남용을 의심하는 국민’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는 자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2월 3일, 계엄 검토의 실체
윤석열 정권은 2023년 말, 촛불 시위의 확산 국면에서 군 병력 동원 가능성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 따르면, 시위의 규모와 확산 양상에 따라 단계적으로 계엄 선포 및 통신·출판 통제, 국회 무력화까지 시나리오화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권 측은 이를 **“불법 폭력 사태에 대비한 단순 검토”**라고 해명했지만, 실제 당시의 시위는 전례 없이 평화적인 형태로 이루어졌고, 충돌이나 폭력은 없었다.
즉, 현실의 위협이 아닌 정치적 불편함을 이유로 ‘비상조치’를 검토했다는 비판이 타당한 상황이다.
84㎡ 아파트, 계엄령, 그리고 ‘그림자’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이 언급한 ‘달 그림자’는 최근 개봉한 영화 《84㎡》 속 장면과도 겹쳐진다.
영화는 서울 아파트 한 칸 안에서 벌어지는 폐쇄된 공포를 그리려 했지만, 관객은 그 안에서 오히려 현실의 압박감과 한국 사회의 공간적 불평등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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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84㎡ 아파트를 얻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은 청년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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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조차 위협받는 생활의 안정성과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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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그림자처럼 무시하는 권력의 시선.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림자인가, 실체인가?
국민의 분노가 허상인가, 권력의 오남용이 실체인가?
우리는 더 이상 그림자에 머물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계엄령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달 그림자’ 따위로 축소하고 미화하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무례다.
국가는 시를 읊는 자리가 아니라, 진실을 책임지는 자리다.
정권은 더 이상 감성적인 비유 뒤에 숨지 말고, 헌법과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정치는 그림자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 위에 드리우는 실체다.
그리고 그 실체가 민주주의를 가리는 순간, 우리는 반드시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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