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때 나는 니콘 D80을 메인 카메라로 사용했다. 주로 각종 행사 사진 촬영이 목적이었고, 그 용도엔 D80이 꽤 충실했다. 컴팩트 카메라에 비해 암부 표현도 상대적으로 좋았고, SB-800 외장 플래시를 함께 사용했을 때의 결과물은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카메라가 2006년 8월에 출시되었고, 나는 2007년 무렵에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광고 화면만 봐도 HD 규격이 아니었기에, 지금 보면 ‘올드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사용법이 간단하고, 포커스링만 조금 조절하면 웬만한 행사 사진은 무난하게 커버가 가능했다.
처음엔 번들로 제공된 두 개의 줌렌즈를 사용했지만, 성능에 만족하지 못해 곧 서드파티 풀프레임용 렌즈 두 개를 추가로 구매했다. 언젠가는 풀프레임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직을 하고, 카메라보다는 다른 기기에 관심이 옮겨가면서 사진에 대한 열정도 점점 식었다. 행사용 사진만 찍다 보니 어느 순간 ‘찍는 재미’가 사라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내 카메라는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사를 하던 중 오랜만에 D80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원을 켜보았고, 놀랍게도 정상 작동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셔터뭉치 외엔 별다른 고장도 없었고, 니콘의 기술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니콘ZF광고 역시 사진은 갬성이야>
하지만 몇 컷 찍던 중 갑자기 미러가 내려오지 않고, 상단에는 ‘Err’ 메시지가 떠버렸다. 아, 고장이구나. 그냥 렌즈나 갈아끼우며 소소하게 사진을 찍고 다닐까 했던 생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수리를 알아봤지만, D80의 수리비는 기기 가격을 훌쩍 넘었다. 미러리스로 넘어가자니 기존 렌즈들을 모두 처분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고, 그렇게 고민 끝에 중고로 DSLR 중급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D850과 D800 사이의 모델들 중에서, 가능하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종을 찾았다.
내 용도는 고화질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1,000만 화소 내외면 충분했다. 대부분 홈페이지나 보고용 자료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D800과 D3를 중고로 구입하게 되었고, 여자친구에게도 카메라를 알려주고 싶어서 두 대를 함께 들였다. 24-70mm N 렌즈도 하나 장만했다.
중고 거래를 진행하며 놀랐던 것은, 카메라 장비 판매자들이 하나같이 매너가 좋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같은 열정을 공유한 사람들이어서일까. 업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판매자들이 장비를 잘 관리했고 설명도 성의 있었다.
근처 대학교에서 간단히 테스트 촬영을 해보았고, 결과는 대만족. 물론 무게가 꽤 나간다는 점은 부담이었지만, 그래도 다시금 사진을 찍는 재미가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필자처럼 오랜 시간 사진과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금 셔터를 누르게 되는 경우,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찍고 싶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가끔 아주 오래된 기계 하나로 다시 살아날 수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