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가뭄이 남긴 '산더미 생수병'

지난 여름 강릉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강수량이 전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오봉댐의 저수율은 기준치를 밑돌며 급기야 재난 상황이 선포되었다. 시민들은 수돗물을 마음껏 쓰지 못했고, 강릉시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대규모 생수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위기는 곧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집집마다 생수를 비축하는 바람에 실제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물이 풀렸고, 그 결과는 페트병 산더미였다. 9월 1일부터 19일까지 배출된 생수 페트병은 27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가뭄이 가져온 고통은 ‘플라스틱 재앙’으로 이어진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 강릉시의 적극적인 대응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수 부족은 어느 해든 예견 가능한 자연 조건이었고, 오봉댐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동시에 감당한다는 구조적 한계는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강릉시는 개발 위주의 도시 정책을 지속하며 물 수요를 늘리는 데만 치중해 왔다. 위기가 닥치자 그저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이후에도 물 관리 체계의 재정비나 절수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가뭄이 아니라, 행정의 무대응과 안일함이 빚은 인재(人災)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일시적인 위기 해소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강릉은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집중호우라는 이중의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행정의 준비 부족은 곧 또 다른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릉시가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오봉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대체 수원 발굴에 나서야 한다. 도암댐과의 연계 활용, 지하수 관리, 빗물 저장과 재이용 등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물 소비가 집중되는 여름철 관광객 유입에 대비한 특별 절수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숙박업소·호텔의 절수 장치 설치 의무화, 공공시설의 물 사용 제한 등은 기본이다.
셋째, 위기 시 생수 공급을 불가피하게 하더라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다회용 용기 시스템 도입, 대용량 공급 방식 등 환경적 관점이 필요하다.
넷째, 시민과 함께하는 상시 절수 캠페인과 장기적 수자원 교육을 통해 ‘비상 시 절약 정신’을 제도화해야 한다.
강릉의 가뭄은 일단락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자연재해가 지나갔다”는 식으로 치부한다면, 강릉은 다시 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진정한 재난 극복은 위기를 넘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위기 이후 무엇을 준비하느냐, 그것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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