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회찬(盧會燦, 1956.8.31~2018.7.23)

대한민국은 2018년 7월,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이름은 노회찬. 그는 화려한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늘 그 변두리에서 서민의 언어로 진실을 말하던 정치인이었다. 그의 부재가 남긴 공허함은 단순히 한 국회의원의 빈자리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갈망해 온 ‘정치가의 품격’을 잃었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노회찬의 정치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는 노동 현장에서 땀 흘리며 “현실 정치”를 고민했고, 민주화를 위해 거리와 공장을 오갔다. 권력의 달콤함을 쫓기보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 최초의 진보정당을 제도 정치권에 안착시키려 했던 그의 도전은 때로 실패로 기록되었지만, 그 흔적은 오늘날 정의당과 다양한 진보 정치의 뿌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말이었다. 그는 “정치는 밥”이라 했다. 정치가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시민이 하루에 먹는 한 끼의 정의를 결정하는 구체적 힘이라는 뜻이었다. 국회에서, 토론회에서,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그는 늘 웃음을 머금고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대기업의 불법 로비를 폭로하며 재벌개혁을 외칠 때도, 복잡한 법안을 설명할 때도 그의 언어는 어렵지 않았다. 유머와 진심이 뒤섞인 그 화법은 국민에게 정치가 멀리 있지 않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스스로를 향해 가장 엄격했다.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 그는 법정 다툼으로 시간을 벌지 않았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떠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짧은 고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그 결정 앞에서 말을 잃었다.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는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책임을 증명했다.
그의 부재는 한국 정치의 결핍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타협과 계산 대신, 원칙과 책임을 선택한 인물. 권력보다 사람을, 명예보다 신뢰를 중시한 정치가. 그의 삶은 짧았으나, 남긴 질문은 길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떤 정치인을 원하는가?”
노회찬이 떠난 지 해가 지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메아리친다. 정의를 말하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 앞에 겸허했던 사람. 대한민국은 그런 정치인을 잃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길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정치를 꿈꿀 수 있다. 그것이 노회찬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1. 생애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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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6년 8월 31일, 경남 창원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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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경남고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후 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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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김지선 씨
어린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사회적 의식을 키웠습니다.
2. 정치·사회 활동 연보
1970~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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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고려대 재학 중 민주화운동 참여. 유신반대·노동운동 관련 학생운동에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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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울 구로공단 등지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로 활동. 노동자 해고, 임금체불,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조직 활동.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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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진보정당의 전신인 민중당 대변인. 이후 진보정치 운동의 핵심 인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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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민승리21 창당 주도. “진보정당 창당”이라는 오랜 목표를 구체화.
2000~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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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주역, 대변인·사무총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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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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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X파일” 폭로로 재벌과 권력 유착을 비판하며 전국적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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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진보신당 창당, 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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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진보정의당(후 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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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서울 노원병) 재선.
3. 주요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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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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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하며 한국 정치사에서 독자적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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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X파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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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과 권력층의 불법 로비 의혹을 사회적으로 확산, 재벌개혁 담론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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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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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보호, 최저임금 현실화, 주거·복지 확대 등 진보정책 의제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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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정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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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정치·정경유착 해소를 강조하며 정치자금법·선거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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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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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화법: 쉽고 유머러스한 언어로 “노회찬 어록”이라 불릴 만큼 명언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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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행보: 국회 대정부질문과 방송 토론에서 날카롭지만 품격 있는 비판으로 호평.
주요 어록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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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외면하면 정치인은 국민을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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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밥이고, 밥은 곧 정치다. 밥 한 그릇의 정의가 정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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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어기면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서지 않는다.”
5. 삶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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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사건: 2018년, 불법 정치자금(두루킹 관련 후원금 4천만 원 수수 의혹)으로 수사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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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3일, 서울시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생을 스스로 마감. 향년 6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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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서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하다”는 말을 남기며, 부당한 정치자금 수수는 아니었지만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힘.
6. 평가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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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미: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상징. 기성 양당 체제에 맞서 ‘제3지대’를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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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이미지: ‘정직한 진보 정치인’, ‘서민의 친구’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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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영향: 이후 정의당 등 진보정당의 성장 토대 제공, 정치개혁·재벌개혁 담론의 초석.
핵심 한 줄 정리
노회찬은 노동 현장부터 국회까지, 진보정치의 길을 개척하며 재벌개혁과 투명정치를 위해 싸운 한국 현대정치의 대표적 진보정치인이자,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한 인물로 기억된다.
ps : 오늘 따라 보고 싶은 사람도 많습니다. 100분토론에서 핵심을 짚어가며, 시청자의 눈높이를 생각한 그의 토론이 그립습니다. 적절한 비유와 호탕한 그의 웃음이 기억에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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