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묘

1945년 8월, 일본은 패전과 함께 전쟁의 참혹한 잿더미 속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패전 이후 일본이 선택한 길은 ‘가해의 반성’이 아니라 ‘피해의 기억’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도쿄와 고베의 공습, 전쟁고아와 피폐한 민중의 삶이 일본의 전후 서사를 채웠고, “우리도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감정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 그 결과 일본은 침략국이자 가해자였던 사실을 감정적 피해자 이미지로 덮어버리는, 이른바 ‘피해자 코스프레’의 국가로 변모했다.
이 피해자 정체성은 단순한 자기위안이 아니라 전후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재편하는 핵심 도구가 되었다. 전쟁의 원인과 책임은 잊히고, 핵 피해와 공습, 전쟁고아의 슬픔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면서 일본 사회는 ‘불쌍한 국민’이라는 자화상을 만들었다. 그 속에서 아시아 각국이 겪은 참혹한 피해와 일본의 전쟁범죄는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 책임의 희석이다. 위안부, 강제징용, 난징 대학살과 같은 범죄는 ‘전쟁의 불운한 결과’로 축소되며, 국가적 사죄는 ‘과거를 파헤치는 불편한 일’로 치부된다. 나아가 “핵의 유일한 피해국”이라는 도덕적 프레임을 통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피해자적 도덕우위를 점하려 한다. 하지만 이 피해는 침략전쟁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그 대표적 문화적 산물이 바로 이사오 타카하타 감독의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1988) 이다. 이 작품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섬세한 작화와 감정 연출로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미군의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소년 세이타와 여동생 세츠코가 굶주림과 절망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 누구나 눈물짓게 만드는 이 작품은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를 그린 듯 보이지만, 그 감정의 방향에는 역사적 망각이 숨어 있다.
『반딧불의 묘』는 “전쟁은 나쁘다”는 교훈을 전하는 듯하지만, 정작 “누가 그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다. 미군의 폭격은 비극의 원인으로 묘사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아시아의 고통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관객은 세이타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그 눈물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전쟁의 피해자 일본’을 향한다. 결국 이 영화는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일본의 피해자 이미지를 감정적으로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반딧불의 묘』는 감동적이지만 위험한 영화다.
그것은 예술적 완성도와 도덕적 정서가 완벽하게 결합한 만큼, 관객이 ‘공감’을 ‘반성’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한국과 중국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가해를 지운 눈물”이라 부른다. 반면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전쟁 반대의 명작”으로 칭송받는다. 이 이중적 수용이야말로 일본 사회가 여전히 과거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반딧불의 묘』가 전쟁의 참상을 그린 예술적 걸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진실의 전달’이라면, 이 영화는 그 절반만 수행했다. 눈물 뒤에 남은 것은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의 공백이었다.
일본이 진정으로 평화를 말하고자 한다면, 피해의 기억만이 아니라 가해의 기억도 함께 마주해야 한다.
‘우리도 피해자였다’는 말은 쉽지만, 그것이 진정한 반성의 언어가 되려면 ‘우리가 가해자였다’는 고백이 먼저여야 한다.
『반딧불의 묘』의 눈물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눈물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슬픔이 향해야 할 곳은 자기연민이 아닌 역사적 성찰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일본의 전후 기억은 피해의 기억을 넘어, 진정한 평화의 기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상처는 눈물로 씻을 수 없다.
오직 기억과 반성만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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